뇌수

울산과 대전

김아스 2020. 5. 8. 04:55

출장온 그곳에서 너를 발견했을때 너무 반가웠다.
나는 항상 먼저 남을 발견하는 사람이고, 너는 내가 불러야 나를 알아차리는 사람이었기에, 식사를 먼저 마쳐 식기를 반납하러 나갔다가 캐리어를 가지러 도로 들어가서 마주친 너와 인사를 나눌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실, 예전에 너가 울산에 자주내려가는걸 알고서는 한번 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출장지에서 시작되는 로맨스라던가 뭐 이런 판타지도 있었고.
그래서 너를 발견했을때 참 설레었다.
원래는 다른곳에서 자려했지만 마침 알맞게 그곳의 메리트가 사라져서(코로나로 인한 조식서비스 불가/주말 가격인상) 핑계좋게 너와 같은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너가 호텔의 맥주 얘기를 꺼내고, 시간 되면 보자고 하는 대화까지 너무 스무스해서 좋았다.
저녁 먹고 돌아와서도 너를 볼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의례적인 밥 한번 먹자, 이런거라 생각했으니까.(그렇게 생각하며 들뜨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들어와서 몇번의 카톡을 하며 나는 너가 나를 볼 생각이 진짜로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멀린으로 갈 수 있음 가는 것도 괜찮겠다 했는데 그건 내 욕심이 과했던거겠지.

 

앉자마자 너는 해맑게 회사를 나간다고 했다.
아, 어찌 내가 마음을 주고싶은 사람들은 다들 떠나는걸까.


9시 40분부터 12시까지, 많은 얘기를 했다.
-너디한 사람들의 핀트와 우리들의 프라이드
-커리어패스 고민
-너의 남자친구에 대한 정보 추가
-결혼에 대한 일반론적 이야기
-같이 아는 동기들에 대한 이야기
-대전오면 불러/진짜 간다?

2시간 넘게 오롯이 너만을 바라보면서 합이 맞는 대화를 했던 경험은, 그래, 하나의 마법이었다.
너에게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는게 기분이 좋았다.

 

진작에 이런 기회가 있었음 좋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일상에서 마주치지 못할 너와 이런식으로 작별할 기회를 세상이 허락 해준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메신저를 보며 너가 언제 떠나는지를 자꾸만 확인했다. 너의 출장이 연장되진 않을까, 하루쯤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성 없는 기대와 함께.

더치페이를 안 받을까 했는데 이걸로 대전에서 너를 볼 빌미는 되지 않을 듯하여 그냥 받았다. 생각해보니 그냥 놔둘걸 그랬다 싶기도 했다. 1주일뒤에 다시 말을 붙일 빌미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오늘 내내 침울했다. 계속 어제 너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길진 않지만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이게 마지막이라니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다.

머리속에는 별 희한한 상상이 다 떠오르는데, 너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애써 잊으려는 보상심리가 발동하는듯 하다.

답답한 마음을 이곳에나마 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