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시험
내가 처음 실패를 경험한 것은 초4학년 첫번째 4급 한자시험때였다.
대치동키즈(의 비슷한 무언가)로 자랐던 내 초등학교 시절, 실패란 받아쓰기 80점을 의미했었다.
하나도 아니고 두개나 틀렸다고? 일어날수 있는일인가 그게??
어쩌다가 70점 맞은적도 있었던거같은데, 그런 날은 세상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여튼 나는 꽤 똘똘한 아이였고 학교에서 특별히 시험을 보고 그랬던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평가라면 당연히 100점을 맞는것이라 생각했었다. 엄마가 그 부분에 대해 엄했던것도 없지 않아있었을텐데, 그냥 스스로 100점 아니면 죽는줄 알았던듯 하다. 실패를 겪기엔 머리가 좋아서 그 나이대에 당연히 겪었어야 할 실패를 못겪어본거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초반부터 엄마는 내게 구몬 한자를 풀게 하였고, 덕분에 아이들의 한자급수 취득을 적극 장려하던(거의 강제하던)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아래에서 나는 일종의 헤드스타트를 누리고 있었다.
그 선생은 시간에도 한자를 쓰게 만들고 최소 1주일에 한번은 한자 쪽지시험을 치게 했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만점자는 그 다음주에 깍두기 공책에 의무적으로 한자를 적어 확인받는 연습에서 면제되었던거같다.
여튼, 나는 구몬을 통해 다 알던 한자를 학교에서 공부시켰던 덕분에 나는 별다른 노력없이 항상 쪽지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였고, 의무한자쓰기 연습에서 면제되었었다. 이때 담임은 3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는지, 나를 포함한 너댓명에게 채점을 대신 맡겼었기에 이 또한 어린 나의 허영심과 교만함을 채워주기에 적절했었다.
하지만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치던 내게 시련이 닥쳐왔으니, 슬슬 내가 모르는 한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ex: 말미암을 유), 알고있는 한자지만 선생이 가르친것과 다르게 훈을 붙였으니 다른 친구가 틀렸다고 채점을 하기 시작해서 선생이 개입하여 시비를 가려주기 시작하는 일도 생겨났다.
(하나 기억나는게 모일 사를 사회 사 라고 적었다. 뭐.... 지금생각해보면 엄밀한 훈을 몰랐던거지)
뭐 여튼, 저런 환경아래서 선생은 한자 급수 취득을 매-우 독려하였고, 7,8급부터 시작하여 일부 앞서나가는 친구들은 5급, 종래에는 4급까지 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선생은 대한검정회 자격증을 따도록 하였으나, 엄마는 그런 근본없는 자격은 취급하지 않고 어문회 시험을 치도록 나를 준비시켰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있었으니, 어문회 4급은 검정회 기준 3급에 해당하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친구들은 다들 (검정회)4급을 따기 시작했고, 선생은 "4급은 기본이지?"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것으로 기억한다.
여차저차하여 나도 (어문회)4급 시험을 보러 엄마 차를 타고 중대부고 시험장으로 향했고, 연필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1차 멘붕이 찾아왔었다. 다행히 같은 고사장에 있던 큰누나에게서 펜을 빌려서 시험을 보긴 하였으나...
세상에, 모르는 한자들이 너무 많았다. 어문회 시험이 근본으로 취급되는 이유가 문제 절반이 주관식 한자쓰기이기 때문인데, 쓰기연습이 너무 안되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시험이란 응당 시험지에 모든걸 적어놓고 시간이 남아야한다고 생각하던터라 시간은 흐르지만 내 시험지는 텅 비었던 그 사실에 더더욱 어쩔줄 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짜 눈앞이 하얘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경험을 느끼면서 나는 일종의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고.. 그 감정을 차에서 기다리던 엄마한테 쏟아내었다. 준비 안된 시험을 엄마때문에 쳐서 내가 이런 수모를 겪는거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나의 준비부족을 마주 볼 준비가 안되었던걸까. 내 생각엔 후자를 떠올리기엔 내가 너무 어렸던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