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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ㅡ
지금부터 딱 10년전보다 열흘쯤 모자란 시기의 얘기다.
나는 그 무렵 머리를 박박 밀린채 논산 입소대대에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러고 있었다. 기록을 뒤져보니 입대일이 2010년 2월 22일이니, 아마 2월 말~3월 초경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카투사라 꿀빤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있었으나, 그럼에도 훈련소라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저냥 형들과 어떻게든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 지금이라면 기겁을 할만한(세탁을 안했으니까) 침낭안에 기어들어가서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노래를 계속 반복하곤 했다.
그중, 짝사랑하던 누나를 떠올리며 계속 한 소절이 머리속에서 도돌이표를 그리던 곡이 바로 윤하의 "편한가봐"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는 더욱 내 깜냥이 되지 않는 그분을 곁에서 좋아하면서 나를 봐주기를 바라며 저 노래를 듣곤 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가사가 그리 잘 들리는 노래는 아니었고, 클라이막스라 부를만한 부분만이 기억속에 남았던 상태였다.
아, 당신들은 모를거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으나, 그 극히 일부분만 기억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는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그렇게 밤중에 몇번이고 반복해서 머리속의 노래를 반복하며 멜로디와 가사를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처음 알던것에서 크게 발전하진 못했던것같다.
뭐-별 생각 다했다. 야간쓰레기(밤중에 분리수거통을 정리하는 작업)나가서 떠오른 달을 보며 그 누나를 떠올리며 속으로 보고싶다 어쩐다 뭐 이런 생각을 다 했었던것같다.
그래서? 결말?
같은 노래, 그나마도 한 대여섯마디정도 되는 부분을 1주일(사실은 사나흘도 안될지도 모른다)넘게 반복해서 머리속에서 흥얼거리면, 노래가 왜곡되는 느낌과 동시에 스스로 흥미 자체가 떨어지게 된다. 자연스레 머리속에서 그 노래를 떠올려도 예전과 같은 감정의 울컥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자연스레 잊고, 논산과 KTA를 거쳐서 자대로 가게 되었다.
자대 배치받은 시기가 대략 4월 말로 기억한다. (2월 22일 입대-논산 5주, KTA 3주 얼추 5월이네) 자대배치 받고서 첫 주에 외박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선임중 한명이 윤하 팬이었고, 내가 윤하를 좋아한다고 하니 뭘 듣고싶냐면서 자기 mp3를 건네주고 듣고싶은것을 들으라고 해서 편한가봐를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는 그냥 꾸준히 외박을 나갔다.
그와중에 그 누나가 우리동네 근처에 와서 얼굴을 한번 보자고 넌지시 물어봤음에도 머저리 등신이었던지라 그 기회를 날려먹고 아무튼 그냥 끝났다. 그 이후로는 왠지모르게 어-색. 디엔드 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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